기억의 기억들

판매개시일
202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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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기억들
마리야스테파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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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마리야 스테파노바 옮긴이│박은정 발행일│2024년 1월 25일 ISBN│ 979-11-91114-54-6 03890 판형│140*210mm (무선) 쪽수│592쪽 정가│19,800원
현대 러시아 문학계의 혜성이 보내온 첨단의 글쓰기
프랑스 최우수외국어문학상, 스웨덴 베르만 문학상 수상작
부커상, 전미도서상, 페미나상, 메디치상, 더블린문학상 외국어문학 후보작
전 세계 문학 팬을 열광시킨 전혀 새로운 소설이 도착하다
러시아 망명 시인 마리야 스테파노바의 첫 소설, 그러나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며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창안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는 “아름다움을 꿈꾸며 살았”던 갈카 고모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작가 자신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화자 ‘나’는 갈카 고모의 집에서 일기장을 발견한다. 사소한 기록으로 가득한 이 일기장은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 가족사를 쓰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만든다.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살아온, 5대에 걸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마리야 스테파노바는 1972년생으로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파스테르나크상, 안드레이 벨리상, 모스크바 어카운트상 등 러시아의 주요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현대 러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이다. 푸틴 체제에 반대하며 현재 베를린에 망명중이며 2023년에는 시집 『옷 없는 소녀들』로 라이프치히 도서상을 수상했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숨겨진 폭력을 고발하는 이 시집은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스테파노바의 작품은 단테, 괴테, 월트 휘트먼과 에즈라 파운드, 잉거 크리스텐센, 앤 카슨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 문학의 메아리 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억의 기억들』은 2021년 부커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올랐고 전미도서상, 더블린문학상, 페미나상, 메디치상 등의 외국어문학 부문 후보였으며 프랑스 최우수외국어문학상과 스웨덴 베르만 문학상을 수상했다.
마리야 스테파노바는 정치적 목소리를 담은 예술과 문화 전문 온라인 잡지 콜타Colta.ru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기억의 기억들』은 마리야 스테파노바의 첫 소설이자 시와 소설을 통틀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기억의 본질과 기록의 의미에 대한 경이롭고도 시적인 탐구
‘나’는 갈카 고모의 죽음을 계기로 자기가 써야 할 이야기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자신의 가계임을 깨닫고는 흐릿한 사진 몇 장, 불완전한 기록 몇 줄에 의존해 지난 세기 격동의 현장을 관통해 살아남은 조상들의 삶을 불멸의 기록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어쩌면 이 보잘것없는 사건들 속에 고모가 불멸의 존재로 만들고 싶었던, 중요한 증언은 없지만 뭔가 이야기를 가진 텍스트, 불속에 던져져 재로 변하지 않을 텍스트 속으로 꼭 데려오고 싶었던 어떤 기쁨의 실체가 담겨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고모는 성공했다. (21-22쪽)
그러나 자신이 조상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증조할머니인 사라 긴즈부르크처럼 혼자 프랑스 파리에 가서 의대를 졸업한 후 러시아로 돌아와서는 볼셰비키로 혁명에 참여했다가 이후 신분을 세탁하고 시골에 숨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며 살았던 문제적인 인물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가족들은 차르의 폭정, 러시아혁명, 두 차례의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레닌그라드 포위전, 그리고 스탈린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과거에 대해 침묵하는 법을 배웠고,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없애버렸다. 그리하여 가족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출처가 불분명한 설화처럼 남는다. ‘나’는 작은 단서들에 의지해 가족사의 흔적을 좇아 유럽과 러시아 곳곳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찾아낸 공문서, 건물, 사진, 편지, 일기 들이 간직한 기억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나’는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드러낼 때 모든 작가가 겪는 어려움에도 직면하는데 “언젠가 내가 가족 이야기를 책으로 쓰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이네들에 대해 말하고 이들을 대신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지만, 첫발을 떼기가 두려웠고 (…) 공개하지 않은 전체 가족사에서 어느 부분에 조명을 비춰야 하는지, 또 어느 부분을 어둠 속에 남겨두어야 하는지, 즉 어둠 속에 두느냐, 빛 가운데로 드러내느냐를 결정하는 자가 되는 게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평생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사를 더 흥미롭게 만들려는 모종의 시도를 한 적이 거의 없었”던 가족의 전통을 따라 몇 년에 걸쳐 집요하게 취재한 사실을 드라마로 꾸미지 않는 채로, 아니, 꾸미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 무더기의 옛날 사진과 자료처럼 독자에게 제시한다.
(…) 나에게 무엇을 쓰느냐고 물었고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아, 작가가 자기 뿌리를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하는 책 중 하나로군요. 지금은 그런 책이 많이 나오지요 “라고 말했고, 나는 “네, 그런 책이 한 권 더 나올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450쪽)
그러나 『기억의 기억들』은 “그런 책” 중 하나가 되기를 거부하며 “그런 책”에 대한 메타적 고찰에 가깝다. 이 소설은 잊힌 집단의 일원이었던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때론 서정적이고 때론 사변적으로,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역사와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교차하는가를 집요하게 성찰한 작품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시대에 쓰인 가장 전위적인 문학적 기억법
『기억의 기억들』은 자서전, 픽션, 여행기, 비평 등 다양한 형식을 활용하면서 지적 탐험과 개인의 기억을 절묘하게 엮어낸다. 이 작품을 읽는 것은 ‘나’와 함께 러시아와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그녀가 찾아낸 가족 사진, 옛날 신문 기사, 공문서, 그림과 편지 들을 같이 읽고 보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야 스테파노바가 고심 끝에 창안한 이 형식이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조율된 가짜 이야기들, 페이스북 같은 SNS가 무한에 가깝게 생성하는 ‘타임라인’과 맞서는 문학적 응전의 방식임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친절한 페이스북이 나를 대신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 기억하는 게(기억할 것과 잊어버릴 것 선택하기) 아니라, 유동성과 불완전성이 나에게 의무로 전가된다는 사실이다. 계속 흘러가는 그 특성 때문에 한없이 새로운 사진으로 채워야 한다. 내 얼굴도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예전 얼굴이 어땠는지 잊을지도 모른다. (224쪽)
기억을 복원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문학이 맡아온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시대, 우리의 기억은 전송되고, 게시되고, 쉽게 휘발된다. 데이터센터에 전자적 신호로 저장된 우리의 기억들은 우리의 육체가 허용하지 못할 정도의 양과 속도로 불어나고 지나간다. 이런 시대에 오래된 사진과 파편화된 기록에만 의존해 역사의 격동기를 겪어낸 가족사를 오롯이 복원하겠다는 스테파노바의 시도는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그리하여 『기억의 기억들』을 읽는 것은 ‘기억을 기억’하려는, 동시에 기억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기록되어야 하는가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이 전혀 새로운 문학적 응전에 동참하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된다.
■ 책 속에서
나의 엄마인 아이가 시무룩하고, 겁에 질리고, 아주 오래전 사라진 흙길을 따라 있는 힘껏 달리는 모습을 보는 건 절대적으로 새로운 친밀함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는 일이었다. 엄마보다 나이가 더 많은 내가 어린 엄마를 돌보고 또 가엾게 여길 수 있는 그런 영역.  _44쪽
내 도자기 소년은 단번에 그 모든 걸 말해주었다. 발뒤꿈치가 잘려나가거나 얼굴을 긁히지 않고는 그 어떤 이야기도 우리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틈새와 간극이 생존의 변함없는 동반자이자 숨은 동력이며 생존의 가속을 부채질하는 내부장치라는 사실을. 트라우마만이 대량생산으로부터 우리를 모호하지 않은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의 분명한 우리로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_108~109쪽
역사에 대한 글에서 랑시에르는 문서와 기념물을 대조한다. 그에게 문서란 역사에 대한 증명이자 “기억을 공식적인 것으로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사건에 대한 모든 종류의 철저한 기록이다. 기념물은 문서와 반대되는 용어이다. “용어의 원래 의미로 볼 때, 기념물은 그 존재 자체로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자 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그 자체로 직접 말을 하는 것이다. (……) 그래서 사람들의 노력과 성과를 기록한 그 어떤 연대기보다 인간의 활동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상용품, 천조각, 그릇, 묘비, 궤짝 위의 그림, 우리는 전혀 모르는 두 사람 사이의 계약서……” _54쪽
기억은 전해지고 역사는 기록된다. 기억은 정의를 중시하고 역사는 정확성을 중시한다. 기억은 도덕을 말하고 역사는 집계하고 오류를 정정한다. 기억은 개인적이고 역사는 객관성을 꿈꾼다. 기억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에 기초한다.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한 절박한 고통에 대한 연민과 공감. 동시에 기억의 영역은 투사와 환상과 왜곡으로 가득차 있다. _120쪽
어떤 의미에서 선택의 필연성(예를 들어, 선과 악 사이에서)이 제거되면 선과 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 남은 건 사실과 사실로 여겨지는 관점의 모자이크뿐이다. _133쪽
묘지는 인류의 주소록으로서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걸 아주 간결하게 설명한다. _169쪽
내가 나타나자마자 과거는 단박에 자신이 뭔가 유용한 존재가 돼주기도, 탐색과 발견, 단서와 계시로 구성된 이야기와 함께 엮이기도 거부했다. _436쪽
나는 죽은 텍스트를 위해 살아 있는 아버지를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텍스트를 더 믿었다. _443쪽
나는 두 증조할머니를 손에 든 두 장의 여왕 카드라 가정해본다. 졸업장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강인한 사라, 그녀의 고집과 추진력은 한번 시동이 걸리면 멈출 줄을 모른다. 그리고 여기 유순한 베탸가 있다. 그녀는 아들이 자라는 동안, 그리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사무실 회계원으로 일하며 소련 시절을 평범하고 단조롭게 살았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역사는 참으로 놀랍다. 1917년 이전에 이루어진 그네들의 모든 선택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두 사람 모두를 빠르게 노파로 만들어버리고는 죽음을 마주한 삶의 끝자락에서 두 사람을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_489쪽
■ 추천의 말
지금까지 현대 러시아 문학에 이런 작품은 없었다. 그 자체로 소우주인 이 책은 가족의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더 거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여정이다. 왜냐고? 이 소설은 과연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한가를 놀랍도록 시적이고 대담한 방식으로 질문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보지 못한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삶의 서투르고 사소하며 놓치기 쉬운 디테일에 애정을 보이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숨겨진 이상함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_ 일리야 카민스키(소설가)
개인과 가족의 역사가 대문자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눈부시고도 매혹적으로 탐구한 작품. 마치 선물이자 부담인 20세기를 언박싱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 듯,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놀랍도록 독창적이면서도 이미 고전이 된 것 같은 작품. _엘리프 바투만(소설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책. 역사의 표면 아래 존재했던 이들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삶에 대한 중요한 증언. _앤드류 맥밀란(시인)
가족사와 문화 비평을 대담하게 접목하여 역사적 격동기를 헤쳐온 유대계 러시아인의 삶을 만화경처럼 펼쳐보인다. _뉴욕 타임스
올해뿐 아니라 근래 출간된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_ 모스크바의 메아리 Ekho Moskvy
■ 차례
1부
1장 타인의 일기 … 11
2장 시작에 대하여 … 33
3장 사진 몇 장 … 60
4장 죽은 자들의 섹스 … 77
1942년 또는 1943년의 료냐 구레비치 … 94
5장 알레프와 그것이 나를 인도한 곳 … 100
6장 사랑의 관심 … 112
7장 불의와 그 면면들 … 126
콜랴 스테파노프, 1930 … 141
8장 해진 구멍과 전환 … 143
룔랴 프리드만, 1934 … 159
9장 선택의 문제 … 168
2부
1장 젊은 이드가 몸을 숨기다 … 189
사라 긴즈부르크, 1905~1915 … 205
2장 셀피와 그 결과 … 222
3장 골드체인은 더하고 우드먼은 뺀다 … 241
4장 만델스탐은 버리고 제발트는 모은다 … 262
룔랴 구례비치, 1947 … 282
5장 한편과 다른 한편 … 284
6장 샤를로테 혹은 불복종 … 302
스테파노프네, 1980, 1982, 1983, 1985 … 326
7장 야곱의 목소리, 에서의 사진 … 336
8장 료디크 혹은 침묵 … 353
9장 요셉 혹은 순종 … 398
10장 내가 모르는 것 … 422
3부
1장 운명은 피할 수 없다 … 455
2장 육아실에서 온 료냐 … 496
3장 소년들 그리고 소녀들 … 535
4장 사진사의 딸 … 569
■ 저자 소개
지은이 : 마리야 스테파노바 Мари́я Миха́йловна Степа́нова
소설가, 시인, 저널리스트
1972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막심 고리키 문학 연구소에서 공부했다. 현재 예술․문화를 전문으로 하는 러시아 독립 미디어 콜타Colta.ru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05년 파스테르나크상과 안드레이 벨리상 등 러시아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소설 『기억의 기억들』로 2021년 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를 비롯, 전미도서상, 더블린문학상, 페미나상, 메디치상 후보에 올랐고 2022년 프랑스 최우수외국어문학상, 2023년 스웨덴 베르만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옷 없는 소녀들』로 2023년 라이프치히 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가 토카르추크, 스베틀리나 알렉시예비치에 이어 앞으로 가장 많이 회자될 작가”로 평가받으며 러시아 문학의 현재로 일컬어지는 스테파노바는 푸시킨, 레르몬토프, 만델슈탐, 츠베타예바와 같은 러시아 시 문학의 계보를 잇는 시인이자, 실비아 플라스, 앤 카슨, 잉거 크리스텐센과 맥을 같이하는 시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스테파노바는 정치와 기억이 만나는 지대를 ‘포스트메모리’라는 개념으로 명명하는데, 『기억의 기억들』은 정치와 역사, 기억에 대한 그의 각별한 탐구가 담긴 작품이다.
옮긴이 : 박은정
조선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게르친 국립교육대학교에서 언어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조선대 동북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아연 소년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도스토옙스키 『백야』, 안톤 체호프 『갈매기』, 톨스토이 『무도회가 끝난 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및 『러시아의 영웅서사시』(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