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판매개시일
2022/07/04
태그
소설집
오직두사람
옥수수와나
최은지와박인수
슈트
신의장난
인생의원점
아이를찾습니다
표지
https://image.aladin.co.kr/product/29745/4/cover200/k772838692_1.jpg
oopy
더 성숙한 아이러니의 세계로.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
김영하 등단 25주년을 맞이해 시작된 ‘복복서가×김영하 소설’ 시리즈 2차분 3종이 출간되었다. 김영하라는 이름을 문단과 대중에 뚜렷이 각인시킨 첫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분단 이후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빛의 제국』, 그리고 비교적 최근작인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이다. 7년간 지면에 발표한 단편들을 모은 『오직 두 사람』은 작가로서 김영하의 내적 전환이 일어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의미심장한 분기점이 되는 작품집이다. 제3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 제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아이를 찾습니다」, 제26회 오영수문학상 수상작 「오직 두 사람」이 포함되었다.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영하는 단편과 장편 모두에서 한국 소설 문학의 스타일을 혁신하면서 총아로 떠올랐다. 김영하는 등단 초기부터 단편으로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검은 꽃』『빛의 제국』등의 묵직한 장편으로는 평단과 독자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드문 행보를 보였다. 2017년에 문학동네에서 초판이 출간된 『오직 두 사람』은 등단 이래 김영하가 왜 내놓는 소설집마다 평단과 독자 모두로부터 호평을 받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단편을 쓸 때의 김영하는 장편을 쓸 때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반전과 아이러니, 블랙유머는 김영하 단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200자 원고지 100매 내외의 짧은 분량임에도 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한 편의 짧은 장편이나 웰메이드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서사적 테크닉을 구사한다. 김영하 단편의 중요한 특징인 반전과 아이러니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독자를 끌고 감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동안 몰입하며 읽어왔던 이야기, 스스로 상상해왔던 결론을 다시 검토하도록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짧은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이야기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느끼게 된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은 얼핏 사부곡처럼 보이는 딸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독자는 자신이 상정해왔던 인물들의 관계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독자는 앞으로 돌아가 다시 소설을 읽게 되며, 그제서야 소설의 서두에 아련한 듯 언급한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게 된다. 김영하는 독자에게 자신의 소설을 다시 읽을 것을 부드럽게 권하는 작가다. 그리고 다시 읽는 독자는 보상을 얻는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아이를 찾습니다」는 김영하 단편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시작 부분에서 대부분의 독자는 유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전개를 예상한다. 부모가 처절하게 노력하여 결국 아이를 되찾든지, 아니면 되찾는 데 실패하든지. 그런데 김영하는 지금까지 아무도 쓰지 않았고, 그렇기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리고 훌륭한 이야기꾼이 그렇듯 지금까지 누구도 쓰지 않았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이 현실적인 이야기로 만든다. 「아이를 찾습니다」에 대한 수많은 독자들의 평도 이를 입증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 너무 두려웠다’는 평부터 ‘어디선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쓴 것이냐’는 리뷰까지, 독자들은 작가가 지어낸 이 짧은 소설을 ‘심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69쪽)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것, 그것이 반전이며 거기에서 비롯된 아이러니가 이 소설의 미학적 성취다. 그런데 김영하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라고 묻는 것이다. 그렇게 그것은 신들의 짓궂은 장난에 희롱당하는 애처로운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소설집의 마지막 수록작이「신의 장난」인 것도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신입사원 연수의 과정으로만 생각했던 방탈출게임은 갑자기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주체성을 가진 인간,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사라지고, 신과 같은 존재에 의해 ‘사육되’고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당하는 존재만 남는다. 인간의 눈높이에서 움직이던 소설 속 시선은 수면가스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부감으로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독자는 이제 인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케이지를 내려다보는 신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게 된다. 「신의 장난」은 판타지적 상상력을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느껴지도록 풀어내어 현실의 비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작가의 초기 단편과 맥이 닿아 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옥수수와 나」는 반전과 아이러니, 블랙유머에 더해 김영하의 전위적인 구성 감각을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시점은 어지럽게 바뀌고, 이야기의 전개는 예측불가능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유머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나는 이 중편소설에서 김영하는 작가와 독자, 출판인의 관계라는, 일반 독자들로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소재를 마치 기괴한 블랙유머가 넘치는 한편의 범죄물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신비로운 영감을 받아 창작에 열정을 불태우면서 자기를 파괴하는 낭만주의적 작가상은 철저하게 부정된다. 이야기가 분절되면서 결국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현란한 플롯도 한국문학의 전통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김영하의 서사적 기예는 이런 거침없고 다층적인 이야기에서 더욱 빛난다. 마지막 줄을 읽을 때까지도 대부분의 독자는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가늠하기 어렵고, 다 읽은 후에는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게 된다. 「최은지와 박인수」「인생의 원점」 그리고 「슈트」, 이 세 편의 작품 역시 김영하 단편소설의 특징인 유려한 서사와 단단한 플롯, 복잡한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은지는 희생자도 아니고, 악인도 아니다. 박인수 역시 악덕 자본가나 음흉한 위선자가 아니다. 선인도 악인도 없는 이야기는 한국 본격문학에는 흔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무심한 최은지의 악행 아닌 악행은 현실에서는 자주 목격되어도 문학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인간형이다. 박인수가 당면한 시련도 사건 자체로 흥미롭다. 그 시련 때문에 위선에도 위악에도 기대지 않으면서 직면한 위기를 돌파해가는 새로운 인간형이 제시될 수 있었다. 「인생의 원점」의 서진과 인아는 또 어떤가. 이 소설의 반전은 독자에게 커다란 쾌감을 주는 대신 서진과 인아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더 알고 싶어하게 만든다. 일종의 ‘아버지 찾기’를 수행하는 「슈트」의 시인에게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응원의 감정을 품지만, 그가 말하지 않은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이 함의하는 불편함 때문에 그 인물에게,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뭔가가 있을’ (186쪽) 거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런 작품들로 구성된 『오직 두 사람』은 김영하 단편소설이 다다른 정점이라 할 것이다. 기왕의 서사적 기예는 더 유려해졌고, 거기에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숙한 시선과 깊은 연민이 더해졌다. 평단과 독서계도 호응했다. 작가의 모든 소설집 중에서 가장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으며 수록작들이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평단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문학동네판이 나온 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아 큰 수정은 없었지만 결정판 출간을 맞아 작가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원고를 다시 꼼꼼히 읽고 문장과 구성을 다듬었다. 그에 더해 한 손에 잡히는 아담한 판형과 산뜻한 디자인의 표지로 새롭게 독자들 앞에 선보인다.